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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반짝이는 오리온자리가 누군가에겐 그저 점 3개뿐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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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덴스마일 2021. 2. 20.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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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타밈 안사리 저, 박수철 옮김) 서평


「다시 보는 5만년의 역사」는 5만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지금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5가지의 큰 관점으로 나누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다른 역사책들과 같으면 같고 다르면 다르게 구성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크게 다르지 않았던 부분은 과거부터 현재 순으로 내용을 풀어나갔다는 것. 그러나 첫 페이지가 가장 오래전이고 마지막 페이지가 가장 최근의 이야기를 담았다기 보단 5가지의 맥락 속에서 각각의 서사를 가지고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이 책만의 구성이다.

 

# 별자리 # 섞물리다

 

계속해서 남는 단어 2개다.

굉장히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역사에 너무나 문외한인 나인지라 책을 덮고 난 후 기억에 남는 내용은 0.1%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것이다. (0%라 하기에는 2주간 책을 붙들고 매일 씨름했던 시간과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지는 것만 같아 0.1%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0.1%속을 비집고 들여다보면 위에 이야기한 2가지의 단어가 존재한다. 저 두 단어가 500페이지에 해당하는 내용의 핵심이자 작가가 5만년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때 가장 많이 고려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 별자리

 

저자 ‘타밈 안사리’는 세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고 있다가 따로 읽었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부분을 포착함으로써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중국과 로마는 전혀 다른 세계였고 관계성이 없어보였지만 가운데에 있던 중앙아시아에서 살고 있는 유목민족이 두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또 다른 세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5만년의 대서사에 기록된 많은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세계 속에 중첩되며 이어져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같은 일을 서술하더라도 관점마다 다른 입장으로 표현하는 것을 발견했기에 관점에 따라서 5만년을 풀어내게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별자리'라고 표현했다. 별자리는 밤 하늘 속 별들의 집합일 뿐이지만 당시 인류는 그것을 별자리라고 불렀고, 고로 별자리는 그들에게 존재했다. 누군가에게는 오리온자리라는 모습으로, 반대편의 누군가에게는 그저 별 3개로 존재했을지라도 각자에게 별자리는 있던 것이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컵을 보고있다고 가정해보자. 동일한 시간속에 있지만 컵을 마주하는 모습은 각각 다르다. 누구는 윗면을 보고, 누구는 손잡이를 보고 또다른 누구는 옆면에 그려진 무늬를 보게된다. 심지어 같은 옆면일지라도 보게되는 무늬가 다를 수 있다. 이와같이 각자 마주하는 컵의 형태는 다르지만 컵의 본질은 같다. 역사도 같았다. 같은 사건이더라도 사회적 별자리, 문화적 별자리, 지리적 별자리, 종교적 별자리에 따라서 다르게 마주했던 것이다.

 

 


# 섞물리다

 

큰 주제가 품고 있는 작은 사건들이 서로 섞물려있다는 점은 이 책만의 정체성이자 저자가 5만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같은 시간 속, 전혀 다른 공간의 세계에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이들은 중간 세계라는 중첩되는 부분에서 섞물려있고, 이러한 섞물림은 곳곳에서 새로운 기준과 출발점이 되어 또 다른 세계의 서사를 적어내려간다.

 

'섞물리기(bleshing) = 섞이기(blending) + 맞물리기(meshing)'

 

'섞물리기'는 방대한 별자리들이 서로 겹칠 때, 그리고 거대 서사들이 결합하여 더 큰 하나의 새로운 세계사적 이야기를 낳을 때, 역사에서 빚어진 일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용어이다. 1953년 작소설 ≪인간 너머 More Than Human≫에서 시어도어 스터전[Theodore Sturgeon]이 처음 만들어낸 단어이자 오로지 소설 속의 인물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소설 속 6명의 등장인물들은 각자 가진 기능장애로 인해 서로 부딪치고 싸우다가 문득 본인들의 기이한 능력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알게된다. 그들의 개별적 능력은 새로운 단일 유기체인 ‘호모 게슈탈트’의 여섯가지 부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게슈탈트(gestalt)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하나의 의미있는 전체, 즉 행동 동기로 조직화하여 지각한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음악을 들으면 커피한잔이 마시고 싶어진다거나 어린아이를 보면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어머니들 행동을 들 수 있다. 각 개체가 게슈탈트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의 감정과 욕구를 하나의 의미있는 행동으로 만들어 행함으로써 완결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인데, 이때 개체는 게슈탈트를 단순하게 인지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본인의 욕구와 감정, 주위환경, 여러가지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가장 매력있는 행동을 게슈탈트로 만든다. 이렇게 각 시대,문화,지리에 따라 존재했던 게슈탈트가 또 다른 세계로 섞물리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이것이 이어져 우리의 세계를 거쳐 미래로 뻗어나간다는 것이 작가의 인사이트다.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다른 기준을 가지고 부딪혔을지라도, 이는 곧 새로운 게슈탈트를 만들어 다음 역사를 남겼고 그것이 지금의 세계까지 오게된 것이다.

 

 


 

나는 역사를 굉장히 싫어한다. 과거의 지나간 일을 왜 우리가 다시 알아야하는지 배워야하나 의문이 들 때도 많았고 지루하고 어려운 옛날 이야기에 그친 적이 많았다. 이렇게 재미없어하는 이유에는 시대순으로 쭉 나열하고 외우라고 하셨던 역사선생님의 영향도 조금은 있을거라는 핑계를 대본다. 그만큼 '역사는 시간에 따른 사건의 나열이다'라는 정의를 벗어난적이 거의 없었던 나에게 관점별로 묶어서 하나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던 책이라 흥미로웠다.

꼭 처음부터가 아니라 눈길이 가는 부분 부터 골라 읽기 시작해도 한 사건이 얼마나 다양하게 비춰지는지, 얼마나 많은 이해관계로 인해 한 서사가 완성되는지를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래도 역사적 지식이 거의 없는 나는 3번이상은 읽어야 이런 관계가 재미있다고 느껴질 것 같다. 나와 같이 역사의 흐름이 곧 시간 순서라고 생각하며 지겨워하셨던 분들은 이 책을 각자의 별자리를 그려가며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또한 책을 덮고 나서 나는 누군가의 시간 속에 어떤 별자리로 남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꽤 매력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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